금융공학 파트에서 ELS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 [금융공학] - 스텝다운 ELS). ELS와 관련하여 잘 알려져 있지만, 굉장히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생각나길래 이 글을 작성합니다.
1. 레전드의 시작 : 키움 ELS1호 탄생
2010년 7월, 키움증권은 장외파생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ELS 시장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ELS 사업의 첫 삽을 뜨는 거라 아주 매력적인 상품을 준비했는데요.
자그마치 수익률이 3년간 최고 90%인 상품입니다. 기사 내용을 자세히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뉴스를 토대로 해당 ELS의 특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구분 | 내용 |
만기/조기상환 | 3년 / 6개월에 한번씩 조기상환 |
배리어 구조 | 90 / 90 / 85 /85 /85 / 80 / 80, 낙인배리어 60 |
쿠폰 | 연 30% |
기초자산 | 현대미포조선과 KT 일일 종가의 워스트 포퍼머 |
참고로
워스트 포퍼머에 대해서는 워스트 퍼포머(worst performer)의 분포 #1의 글을, ELS의 구조에 대해서는 [금융공학] - 스텝다운 ELS의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후속 기사를 보니 다음의 기사도 있네요.
자, 이렇게 키움증권 ELS 1호는 모집한도 금액 50억을 꽉 채우며 출발합니다.
2. 레전드의 면모
해당 ELS의 디테일을 키움증권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스케줄 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와 같이 3년 동안 6개월 간격으로 상환 기회가 있습니다.
일자 | 내용 | 기초자산퍼포머스 |
2010-09-03 | 발행일 | 워스트포퍼머 |
2011-02-28 | 1차 조기상환 | 워스트포퍼머 |
2011-08-31 | 2차 조기상환 | 워스트포퍼머 |
2012-02-28 | 3차 조기상환 | 워스트포퍼머 |
2012-08-30 | 4차 조기상환 | 워스트포퍼머 |
2013-02-26 | 5차 조기상환 | 워스트포퍼머 |
2013-08-30 | 만기상환 | 3일 평균 워스트 포퍼머 |
특이한 점은, 배리어를 넘는지 관찰을 할 때 1~5차 조기 상환까지는 두 자산의 워스트 포퍼머(worst performer)로 관찰을 했다면, 만기상환일에는 3일 평균의 워스트 포퍼머를 썼다는 것입니다.
3년 뒤의 일을 어찌 예상할 수 있을까냐마는 만기 상환일날 주가가 폭락하여 수익 상환이 안될 수 있기에 평균으로 따져서 상환 확률을 높여주자는 발행 증권사의 배려였을 수 있겠지요. 물론 역으로 만기 상환일날 주가가 폭등해도 3일 평균하여 수익 상환 안 되는 확률도 존재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3. 삐끗한 레전드
발행일 2022.9.3 현대미포조선과 KT의 종가는
일자 | 현대미포조선 | KT |
2010-09-03 | 166,500 | 44,150 |
이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현대미포조선과 KT의 퍼포먼스 3년치를 그려보면,
발행일로부터 주가들이 상승한 적도 있지만 슬슬 흘러내리더니 2011년 3분기부터는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이때 즈음 사상 초유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이유가 있었죠. 한참을 기다가 다시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발행일의 주가 수준에는 두 종목 모두 미치지 못합니다.
게다가 ELS의 수익을 결정하는 것은 이 두 종목의 워스트포퍼머이죠. 워스트포퍼머만 따로 그려보면 아래처럼 됩니다.
검은색 그래프가 워스트 포퍼머 입니다. 아.. 상황이 좀 심각해 보이네요. 왜냐하면 흘끔 보더라도 일단 워스트포퍼머가 배리어 60% 미만을 내려간 곳이 보이죠. 2011.9월 경인 거 같습니다. 만일 그전에 조기상환이 안되었다면 얘는 낙인을 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각 구간의 배리어랑 비교해서 그려볼까요?
위의 그림을 보면 각 상환일날 워스트 포퍼머를 연두색 동그란 점으로 강조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만기상환일 다가오면서는 여러 개의 점을 찍어본 것이고요(3일 평균으로)
파란색 실선이 이 ELS의 조기상환 배리어인데요. 조기 상환 시점들을 보니 다 배리어보다 밑에 있네요.
하지만 만기상환은 육안으로 구별이 불분명합니다.
조기상환은 안되면서 심지어 2011.9.26에는 낙인을 시원하게 쳐버립니다. 이제 이 상품은 손실 확률이 생겨버린 상황이죠.
2011.9.26 어느 투자자의 일기
고수익을 보장한다길래 피 같은 돈 천만 원을 투자했는데, 오늘 낙인이라는 걸 치면서 손실 날 수도 있게 됐다.
주가가 떨어지면서 조기상환은 커녕 돈은 돈대로 묶이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인가?
세계 경제가 좋아져 주가가 폭등이라도 하면 조기상환 되든지.. 아니면 기준가의 80% 수준만이라도 올라주면 큰 수익 먹을 수 있는데.. 앞이 안 보이는 터널이 더 깜깜 한 건가..
위 투자자의 바람대로 주가가 회복하여 앞으로 남은 조기상환 찬스에 상환이 되던지, 만기 때 기준가 80%를 넘어서든지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온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시간은 흘러 흘러 5차 조기상환 시점이 지났는데도 얘는 상환이 안됩니다. 정확한 숫자를 보자면,
일자 | 내용 | 현대미포 조선종가 |
KT 종가 |
현대미포 퍼포먼스 |
KT 퍼포먼스 |
Worst Perform. |
배리어 |
2011-09-03 | 발행일 | 166,500 | 44,150 | 100.00% | 100.00% | 100.00% | |
2011-02-28 | 1차 조기상환 | 173,000 | 39,100 | 103.90% | 88.56% | 88.56% | 90.00% |
2011-08-31 | 2차 조기상환 | 137,000 | 36,750 | 82.28% | 83.24% | 82.28% | 90.00% |
2012-02-28 | 3차 조기상환 | 152,500 | 32,300 | 91.59% | 73.16% | 73.16% | 85.00% |
2012-08-30 | 4차 조기상환 | 122,000 | 34,350 | 73.27% | 77.80% | 73.27% | 85.00% |
2013-02-26 | 5차 조기상환 | 116,500 | 34,600 | 69.97% | 78.37% | 69.97% | 80.00% |
제일 마지막 두 열 워스트포퍼머와 배리어를 비교해보세요. 조기상환 기회를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배리어와 더 멀어져 버리는 느낌이네요.
이제 만기 시점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4. 마지막 승부
이제 마지막 구간만 그래프로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 구간은 2013.2.27~ 2013.8.30입니다.
워스트 포퍼머와 마지막 배리어 80의 승부를 보시죠.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하자면, 워스트 포퍼머가 마지막 배리어랑 마지막 승부를 펼치면서
80% 이상에 안착하면 수익 90%, 안착 못하면 안착 못한 만큼 손실!
인 상황인 겁니다.
2013.5월, 드디어 워스트 포퍼머가 배리어를 이깁니다. 투자자의 기쁨의 환호성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내 주가는 힘을 잃고 배리어에게 다시 기회를 내주지요.
2013.7월 다시 힘을 내서 등반하는 워스트 포퍼머, 여러 차례 고꾸라 집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이제 일주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5.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승부는 마지막까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날 KT가 전일대비 0.97% 상승해 주면서.. 신은 투자자를 선택했죠. 정말 대단한 진검 승부지 않습니까?
마지막 날 배리어를 상회하지 않았다면 투자자는 3년 동안 돈이 묶인 채 아무것도 못해보고 결국 -20% 손실을 얻는 지옥을 경험했을 겁니다.
마지막 구간에서 워스트 포퍼머의 위치에 따른 손익의 극명한 변화를 볼까요?
정말 후덜덜한 손익 변화죠. 원금대비 -20%와 90%의 수익을 워스트포퍼머의 미세하고도 깨알 같은 움직임이 좌지우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키움 ELS1호는 투자자들에 방긋 웃어주었고, 투자자들은 간담을 쓸어내리며 기쁨과 아찔함이 교차하는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마치 아래 포스터의 등장인물들이 투자자들의 만기 때 모습 같네요.
6. 여담
3일 평균 워스트 퍼포머로 더욱더 극적인 효과 연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기나 조기상환시점 때 워스트 포퍼머의 3일 평균을 쓰곤 합니다. 잘 나가던 주가가 하필 상환 시점에 폭락하여 상환 안 되는 일이 없게끔 주가를 스무딩하는 취지죠. 그런데 키움증권 ELS1호는, 당연히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3일 평균 워스트 포퍼머를 하는 바람에 더욱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파란색 선이 바로 그냥 워스트 퍼포머였습니다. 그나마 3일 평균 워스트포퍼머보다 넉넉하게 넘었죠. 괜히 3일 평균해서 배리어를 못 넘었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네요. 당연히 결과론적인 해석입니다.
발행 증권사는 괜찮은가?
다음의 뉴스를 보시죠.
뉴스를 발췌해 보면
흥미진진했던 상황을 담백한 어조로 써놓은 기사입니다. 오히려 키움증권에서 고객 만족도가 제고되어 참으로 좋아다라는 인터뷰를 했네요.
고객에게 수익은 누구 돈으로 줘야 할까요? 원금 50억 외에 90% 이자인 추가 45억 말입니다. 이는 당연히 증권사가 고객 돈 50억을 받아서 이래저래 운용을 열심히 해서 45억을 추가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것을 헤지(hedge) 운용이라 합니다. 정교하고 계량적인 방법을 써서 일일 주가의 움직임을 관찰, 기초자산을 사고파는 행위를 하며 추가 수익을 만들어 놔야죠.
이걸 미처 만들지 못했으면 증권사 입장에서 손실, 충분히 만들어 냈으면 수익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연 키움 ELS1호는 저 수익 90%을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손실로 끝날지 수익으로 끝날지 모르는 마당에, 또 기초자산이 3년 동안 저렇게 질질 흘러내린 마당에 추가 수익을 만들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손실 상환일 경우 -20% 를 가정하면, 헤지 트레이더들은 잘 봐줘야 -20%와 90% 인 35% 정도 추가 돈을 만들어 내놨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 만기날 2013.8.30 한방에 나머지 55% (=90%-35%)를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하죠.
결국 레전드 ELS 1호는 수익상환이 되며 고객에게 줄 돈을 마련하고자 다른 주머니에서 돈을 빼왔을 것입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한방에 터진 큰 손실인 것이죠.
하지만 키움증권은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고객을 만족시켰기도 하거니와. 자기 회사는 손실 볼 것이 없기 때문이었죠. 왜냐면, 레전드 키움 ELS 1호는
다른 증권사에서 만든 ELS를 사 와서 다시 고객에게 판 것
이었죠.
사실 키움이 장파 라이선스를 받고 얼마 안 되어 이러한 ELS를 구조화할 역량은 당장은 없었을 것입니다. ELS 비즈니스 시작의 신호탄을 날릴 겸, 이미 역량을 갖춘 ○○증권사가 발행한 ELS을 사 와서, 그걸 다시 판 거죠.
따라서 키움은 고객에게 줄 돈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증권사에 받으면 그만이죠. 이것을 백투백(back to back)이라 합니다.
결국 위 happy news의 이면에는 수익 금액을 미처 만들지 못해 와장창 손실을 본, 또 상환되지도 않는 상품을 3년이나 길러가며 마음고생을 한 증권사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만기상환 일주일 전부터는 ○○증권사 입장에서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손실로 끝나라는 약간의 나쁜 마음도 먹어가며 기도하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모든 걸 다 떠나 ELS 같은 중수익/중위험으로 대변되는 상품에 년 30%의 쿠폰을 녹일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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