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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야기

ELS상환을 증권맨이 좌지우지한다?!

by hustler78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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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의 시장감시위원회 자료를 보다 보니, ELS/ELW 관련 회원제재금을 내역이 눈에 보이길래 무슨 내용인가 싶어 하나의 예를 캡처해봤습니다.

 

2009년 7월, 지금으로부터 13년이나 더 된 일입니다. ELS를 고객에게 판매한 증권사가 어쩐 일인지 기초자산 주식을 시세 조종하여 큰 벌금을 맞고, 트레이더가 감봉까지 당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 것 같은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 증권  ELS 357회

 

한 증권사에서 다음의 구조를 갖는 ELS를 발행했습니다.

 

구분 내용
발행일 2008.4.18
만기/조기상환 2년/6개월,  조기상환 6m, 12m, 18m
기초자산 SK에너지, 포스코
배리어 구조 85 - 80 - 75 - 70 ,  낙인 50
쿠폰 연 24%

SK에너지라는 종목이 생소할 텐데요.  SK이노베이션의 예전 이름입니다.  15년 전 ELS 비즈니스가 태동한 지 얼마 안 되고 종목형 ELS가 주축을 이루면서 기초자산으로 가장 많이 쓰였던 종목이 SK에너지와 포스코였습니다, 

현재에는 종목형 ELS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거의 대부분 지수형 기초자산입니다.

 

도식화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과연 이 ELS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리만 사태를 정통으로 맞은 시장, 그리고 빠른 회복

 

해당 ELS는 2008.4.18. 의 주가를 기준가로 시작합니다. 

일자 POSCO() SK에너지()
2008-04-18                 452,000 120,000

 

또  2008.4.18 일부터 1년간의 주가 흐름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시작해서 며칠간은 방향성을 탐색하던 주가들이 이내 하락세로 접어들었습니다. 08년도 리만사태가 터지기 약 3~4개월부터 하락의 흐름을 보여주네요.  결국 10월 최악의 폭락장을 맞이해 주가 역시 박살이 납니다. 이후 슬금슬금 회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1년간은 기준가를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죠.

 

 

이를 워스트 포퍼먼스(worst performance)로 그려볼까요?

 

그림을 그려보니, SK에너지가 워스트 퍼포머 그 자체였네요. 포스코는 하락폭이 심해도 발행 즈음 폭등한 저력으로 계속 베스트 퍼포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배리어와 워스트퍼포머

이제 배리어와 함께 비교해볼까요? 우선 조기상환 스케줄을 보면

구분 일자
발행일 2008. 4. 18
1차 조기상환 2008. 10. 15 (?)
2차 조기상환 2009. 4. 15

(오래전 ELS라 1차 조기상환일이 확실친 않습니다.)

 

배리어와 워스트 포퍼머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차 조기상환 일자가 확실친 않지만, 그즈음에는 아주 넉넉히 조기상환 실패 조건을 만족하고 있죠. 배리어(85%)와 이격이 꽤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리만사태를 정통으로 맞아 2008년 10월 시원하게 낙인까지 쳐버린 상황이 되었습니다.

 

위기의 진폭이 잦아들며 주가는 차츰 회복이 됩니다. 이윽고 2차 조기상환일인 2009.4.15일이 되었는데요.

 

아.. 육안으로 보이지 않네요. 상환이 되었을까요? 안되었을까요?

 

 구분 포스코 SK에너지
2009. 04.15  389,500 95,900
기준가 452,000 120,000
포퍼머 86.17% 79.92%

배리어 80% 이상이어야 조기상환인데, 기가 막히게도 79.92% 의 워스트 포퍼먼스를 보이며 조기상환이 되지 않았습니다.

 

주가로 따져도 SK에너지의 기준가인 120,000원의 80% 인 96,000원 이상이어야 조기상환인데 기가 막히게 100원 모자란 95,900원으로 종가가 결정된 것입니다.

 

 

 

투자자들 뿔났다.

당연히 오매불망 상환을 기다렸던 투자자들의 허탈함은 컸을 것입니다. 어이가 없었겠죠.

 

아직 1년이나 남았고 상환 기회가 2번 더 남았으니(2009.10월, 2010.4월)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별말 없이 넘어간 투자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2번째 조기상황일, 즉, 2009.4.15일 날 해당 ELS를 발행한 증권사 창구로 무려 140억 원어치의 SK에너지 매도 체결이 이루어진 증거가 나왔습니다.  해당 ELS에 투자한 사람들이 소송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러부터 한 6년에 걸쳐 지루한 법적 공방이 이루어진 걸로 보이는데요.

 

이 사건과 관련한 판결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 판결문을 읽으니 2009.4.15일 트레이딩 상황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판결문의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습니다.(공소외 3 회사는 바로 SK에너지를 말합니다.)

이 사건 ELS의 조기상환조건이 충족되지 못하게 되었는데, 위 공소외 3 회사 주식의 매도량은 단일가매매 시간대에 체결된 공소외 3 회사 주식 전체 거래량의 81.1%에 달하는 것이었고 호가관여율은 24.3%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 사건 기준일에 공소외 3 회사 주식의 종가를 이 사건 ELS의 상환기준 가격인 96,000원 미만으로 인위적으로 형성 및 고정시킬 목적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은 방식으로 장 마감 직전에 단일가매매 시간대 전체 공소외 3 회사 주식 거래량의 80%가 넘는 87,000주에 대하여 상환기준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집중적인 매도주문을 함으로써 자본시장법 제176조 제3항에 정한 시세고정 행위를 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비록 델타헤지를 위하여 위와 같은 수량의 공소외 3 회사 주식을 매도할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의 존재가 피고인에 대한 시세고정 목적의 인정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해당 상품은 조기상환 조건 충족 시 24%의 이자를 주는 상품입니다. 그러면, 헤지 트레이더들은 기초자산인 POSCO와 SK에너지 주식을 사고팔면서 이 24%를 1년 안에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하죠.

따라서 이 ELS을 운용하면서 POSCO와 SK에너지를 제법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SK에너지가 워스트포퍼머였으므로 이 종목을 훨씬 더 많이 들고 있었겠죠.

 

그런데, 이 상품이 조기 상환이 되려 합니다. 그러면 이 ELS 이자를 만들기 위해 가지고 있던 POSCO와 SK에너지 주식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죠. 따라서 조기상환되는 날, 얘네들도 모두 시장에 내다 팝니다. 괜히 가지고 있어 봤자, 다음날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을 보게 됩니다(물론 주가가 오르면 망외의 수익을 얻지만, 이런 확률에 기대고 싶진 않죠)

 

제가 ELS 트레이더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해석해 보자면, 두 가지 중 한 가지 이유였을 거 같습니다.

 

1. 조기상환이 확실시되므로 ELS 기초자산인 POSCO와 SK에너지 주식을 모두 청산함

 

2. 고객에게 24% 이자를 줘야 하는데 아직 이만큼 벌어놓지 못했으므로 ELS상품을 강제 만기 연장시키기 위해 주가를 떨어뜨려 상환되지 않게 함

 

대법원은 2번의 이유를 들어 판결을 내린 것 같습니다.  주가가 95,900 원에 형성됨에도 불구하고 매도 폭탄을 때린 것을 유의미하게 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트레이더의 입장에서도 조기상환 당일 기초자산 청산은 당연 이해가 갑니다. 괜히 쓸모없는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손실의 위험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조기상환에 가능성에 의한 청산의 이유도 있지만, 그 매도 물량이 ELS 발행금액 대비 과도한 부분은 있었던 거 같기도 합니다.

 

이 사건 전후로 몇 건의 ELS 기초자산 시세조종 의심 사례가 계속 생기면서, 금융 당국의 모니터링 수준이 강화되었고 ELS 트레이들도 상환일에는 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아예 거래를 안 하는 분위기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여담

 

해당 ELS는 우여곡절을 딛고 3차 조기상환 도전이라는 6개월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3차 조기상환 시점이 있는 2009년 10월 중순, 주가는 이미 많이 회복하여 3차 배리어를 넉넉히 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빨간 점선 영역이 3차 조기상환 도전, 녹색 점이 당시 워스트퍼머 레벨

 

소송을 걸었던 투자자들의 화도 많이 누그러졌을 것입니다. 1.5년간 무려 36%의 수익을 챙길 수 있었으니까요. 반면 해당 ELS 발행사는 원치 않는 소송에 휘말리며, 특히 헤지 부서의 마음고생은 대법원 판결이 난 2015년까지 장장 6년 동안 이어졌을 것입니다.

 

선거에서도 한표 차이가 있지만, 주식과 ELS 세계에서 한 틱 차이로 벌어진 씁쓸한 사건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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